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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중간에 책을 덮는 진짜 이유
전문가의 글이 재미없는 이유가 있다.지식이 부족해서?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너무 많이 알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자신이 수년에 걸쳐 체화한 개념들을 독자도 당연히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 그 간격이 좁혀지지 않은 채로 문장이 이어지면, 독자는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같은 줄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눈은 텍스트 위에 있는데,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 그런 대혼돈의 상태. 한번쯤 경험해본 적 있을 것이다. 이 간격을 메우는 것이 바로 쿠션어다.  필자는 이를 '사람 냄새'라고 부르고 싶다.딱딱한 내용 사이사이에 독자가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흐름을 놓치지 않게 잡아주는 것. 그게 쿠션의 역할이다.쿠션어의 대표적인 형태는 예시와 연결어이다. 아래를 보자.  [쿠션 없는 버전]매몰비용(Sunk Cost)이란 이미 지출되어 회수 불가능한 비용으로, 합리적 의사결정 시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매몰비용에 영향을 받는 의사결정 오류, 즉 매몰비용의 오류(Sunk Cost Fallacy)를 범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자원 배분의 비효율을 초래한다. [쿠션 있는 버전]매몰비용(Sunk Cost)이란 이미 지출되어 회수 불가능한 비용으로, 합리적 의사결정 시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우리도 일상에서 자주 겪는 일이다.예를 들어 이미 5만 원을 주고 콘서트 티켓을 샀다고 생각해보자. 그런데 공연 당일 몸이 좋지 않다. 환불도 불가능하다.이때 많은 사람들은 “돈이 아까우니까 그냥 가야지”라고 생각한다.바로 여기서 매몰비용의 오류가 발생한다. 이미 지출한 5만 원은 지금의 판단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가든 가지 않든 그 돈은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고려해야 할 것은 오직 오늘의 컨디션뿐이다. 차이가 느껴지는가. 내용은 같다.그러나 앞의 것은 읽고 나서도 "그래서?"가 남고, 뒤의 것은 읽는 중에 "아, 나도 이런 적 있는데"가 나온다.그 한 문장의 차이, 볼드 처리 되어있는 예시와 연결어들은 독자가 계속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돕는다.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아니냐고?언어학과 교육심리학에서는 이를 '텍스트 응집성(text cohesion)'이라고 부른다. 오클라호마 대학교 연구팀이 성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문장과 문장 사이를 명시적으로 이어주는 장치들(연결어, 지시어, 예시)이 촘촘한 텍스트를 읽은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이해도가 유의미하게 높았다. 흥미로운 건 읽기 능력이 뛰어난 독자일수록 그 차이가 더 컸다는 점이다.전문서적의 독자, 즉 어느 정도 배경지식을 갖춘 사람들도 쿠션 앞에서는 예외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냐고...?그렇다... 사실 꽤나 머리가 아프지만 당신이 읽고 있는 모든 책에서 편집자는 그 과정을 수행해왔다.최대한 독자의 피로와 부담을 덜기 위해서, 최대한 독자가 그 내용을 다 이해하기를 원해서, (그리고 이 책이 이해도 잘 되고 유익하다는 소문을 널리 널리 퍼트려 매출을 높이기 위해서) 말이다! 쿠션이 없는 글은 독자에게 선택지를 두 개만 남긴다. 완전히 이해하거나, 그냥 덮거나. 중간이 없다.뭔 말인지 모르겠는데 추가 설명도 없으니, 독자는 그냥 덮어버린다. 우리가 대학교재를 떠올릴 때 '지루한 교과서'라는 인식이 생기는 것도 같은 이유다.대학교재가 나쁜 글이어서가 아니라, 단행본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읽어나가도록 설계된 글이 아닌 것이다(대학 교재 작업을 해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는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목적의 차이에 가깝다). 반면 쿠션이 있는 글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일단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대충 뭔가 알 것 같은데, 좀 더 읽어보자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이 챕터가 100% 소화되지 않아도 다음 챕터의 문이 닫히지 않는다.끝까지 읽고 나면, 앞에서 흐릿하게 지나쳤던 것들이 뒤의 맥락으로 자연스럽게 채워진다.처음부터 다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글, 그게 좋은 전문서가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배려다.그렇기에 당신이 잡고 있는 그 원고 또한, 당신의 책을 읽을 미래의 독자들을 위해 텍스트 응집성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잠깐.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라는 것은 절대절대 잊지 말자.독자가 굳이 돌아돌아 가지 않아도 되게 흐름을 먼저 잡고, 그 다음 사람 냄새 나게 편집해야 한다.구조가 고속도로라면, 쿠션은 그 위에 그어진 차선인 셈이다.  지식의 깊이가 글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그 깊이를 얼마나 함께 내려갈 수 있게 만드는지가 글의 가치를 결정한다.
말은 잘하는데 왜 글은 못쓸까?
구어와 서면어는 다르다.말을 글로 옮겨본 적이 있는가? 직접 해보면 금방 안다. 대화는 상대의 표정과 반응을 읽으며 실시간으로 조율된다. "이해됐어?" 한 마디에 설명을 덧붙이기도 하고, 같은 말을 다른 방식으로 반복하기도 한다.틀린 말을 했다 싶으면 "아, 그게 아니라"로 바로 수정할 수 있다. 말은 그런 의미에서 살아있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내용보다 관계가 앞서고, 정확함보다 온도가 먼저 전달된다. 그러나 글은 다르다. 독자의 반응을 볼 수 없고, 내보낸 뒤에는 수정할 기회도 없다. '이 표현은 좀 달랐어야 했는데'라고 뒤늦게 생각해도, 이미 나간 글은 돌아오지 않는다.말이었다면 "아, 그게 아니라"로 넘어갔을 한 문장이, 글에서는 그대로 남아 독자의 인상을 결정짓는다. 그렇기에 글은 말보다 훨씬 섬세한 작업이다. 동시에, 그것이 글의 가능성이기도 하다.어투 하나까지 조정할 수 있고, 독자가 읽기 전까지 얼마든지 다듬을 수 있다. 퀄리티가 온전히 작성자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 이건 책임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한 셈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  말하기가 잘 되어서 당연히 글도 잘 쓸거라 생각했는데. 그런데.말은 잘 하는데, 글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이유는 단순하다. 글쓰기를 처음부터 '글'로 시작하려 하기 때문이다. 강의를 하면 한 시간도 거뜬한데, 같은 내용을 원고지에 옮기려 하면 첫 문장부터 막힌다.말로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던 논리가, 글로 쓰려는 순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진다. 이건 콘텐츠의 문제가 아니다. 형식의 문제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콘텐츠는 갖고 있다. 방법을 모를 뿐이다.그렇다면 순서를 바꿔보면 된다. 하고 싶은 말을 먼저 구어로 녹음하고, 그것을 전사한 뒤, 스도쿠 퍼즐을 맞추듯 조각들을 글의 구조에 끼워 맞추는 것이다. 녹음된 10분짜리 설명을 전사해보면, 생각보다 핵심 문장이 두세 개밖에 없다는 걸 발견한다.나머지는 반복이거나, 예시거나, 군더더기다. 말할 때는 자연스럽게 느껴졌던 것들이 텍스트로 보면 전혀 다르게 보인다. 그걸 솎아내면 글의 뼈대가 드러난다. 뼈대가 보이기 시작하면, 그다음은 살을 붙이는 일이다.어렵다고? 그럴 것 같긴 하다. 최대한 쉽게 설명해보겠다.글의 구조는 기승전결이다. 드라마의 전개와 같다고 보면 쉽다. 한 주인공이 예기치 못한 사건에 처하는 것, 발단에 대한 기,그 사건에서 벗어나려 스스로 발버둥치는 것, 본격적인 승,그러나 혼자서는 역부족이어서 누군가의 조력을 받게 되는 것, 이야기의 최고조로 올라가는 전,그리고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며 하나의 교훈이자 결론을 남기는 것이 결이다. 글도 마찬가지다.독자에게 문제를 인식시키고(기), 스스로 시도해보게 하고(승), 한계를 자각하게 만들고(전), 해결의 방향을 제시한다(결).  이 흐름을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글의 완성도는 달라진다. 기승전결이 없는 글은 말하자면 도입도 결말도 없는 드라마다. 재미없을 수밖에 없고, 기억에도 남지 않는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기승전결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실수하는 부분은 '결'이다. 결론을 쓰는 게 두렵거나, 너무 당연한 말 같아서 흐지부지 끝내버리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여기서 앞서 계속 주장해온 내용과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편집일 4년간 실제로 그런 경우를 많이 봤다)그러나 독자는 결에서 글 전체를 판단한다. 마지막 인상이 곧 그 글의 인상이다. 그렇다면 핵심 포인트는 어떻게 잡는가.앞서 녹음했던 내용을 천천히 들어보자.말로 했을 때 가장 강조했던 부분, 목소리가 커지거나 속도가 느려졌던 그 대목이다. 발표나 강의를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청중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하는 순간이 있다. 그게 핵심이다. 글에서는 그 순간을 설계해야 한다. 포인트를 정했다면, 그것을 서면어로 어떻게 옮길지 생각해야 한다. 같은 의미라도 단어 선택에 따라 무게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중요합니다"와 "간과하기 어렵습니다"는 비슷해 보이지만 독자에게 전혀 다른 인상을 남긴다.전자는 필자가 독자에게 선언하는 것이고, 후자는 독자가 스스로 납득하게 만드는 것이다. 좋은 서면어는 설득하는 게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결론에 도달하도록 설계된다. 그 차이가 글의 격을 만든다.  이런 감각을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실 독서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면, 지금 당장 근처에 있는 책 한 권을 꺼내보자. 수필이나 문학은 제외하고, 비즈니스서나 실용서면 충분하다.그리고 내용은 읽지 않아도 된다. 이것만 살펴보자.문장이 어떻게 끝나는가. 조사는 어떻게 쓰였는가. 단락과 단락을 연결하는 접속어는 무엇인가. 명사가 어떤 맥락에서 선택되었는가.이 네 가지만 분석해도, 서면어의 결을 읽어내는 눈이 생긴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해부'하는 것이다. 좋은 요리사가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레시피를 역산하듯,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좋은 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거꾸로 분석하는 습관이 필요하다.콘텐츠는 이미 당신 안에 있다. 그것을 꺼내는 방법이 아직 손에 익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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