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잘하는데 왜 글은 못쓸까?
구어와 서면어는 다르다.말을 글로 옮겨본 적이 있는가? 직접 해보면 금방 안다. 대화는 상대의 표정과 반응을 읽으며 실시간으로 조율된다. "이해됐어?" 한 마디에 설명을 덧붙이기도 하고, 같은 말을 다른 방식으로 반복하기도 한다.틀린 말을 했다 싶으면 "아, 그게 아니라"로 바로 수정할 수 있다. 말은 그런 의미에서 살아있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내용보다 관계가 앞서고, 정확함보다 온도가 먼저 전달된다. 그러나 글은 다르다. 독자의 반응을 볼 수 없고, 내보낸 뒤에는 수정할 기회도 없다. '이 표현은 좀 달랐어야 했는데'라고 뒤늦게 생각해도, 이미 나간 글은 돌아오지 않는다.말이었다면 "아, 그게 아니라"로 넘어갔을 한 문장이, 글에서는 그대로 남아 독자의 인상을 결정짓는다. 그렇기에 글은 말보다 훨씬 섬세한 작업이다. 동시에, 그것이 글의 가능성이기도 하다.어투 하나까지 조정할 수 있고, 독자가 읽기 전까지 얼마든지 다듬을 수 있다. 퀄리티가 온전히 작성자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 이건 책임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한 셈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 말하기가 잘 되어서 당연히 글도 잘 쓸거라 생각했는데. 그런데.말은 잘 하는데, 글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이유는 단순하다. 글쓰기를 처음부터 '글'로 시작하려 하기 때문이다. 강의를 하면 한 시간도 거뜬한데, 같은 내용을 원고지에 옮기려 하면 첫 문장부터 막힌다.말로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던 논리가, 글로 쓰려는 순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진다. 이건 콘텐츠의 문제가 아니다. 형식의 문제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콘텐츠는 갖고 있다. 방법을 모를 뿐이다.그렇다면 순서를 바꿔보면 된다. 하고 싶은 말을 먼저 구어로 녹음하고, 그것을 전사한 뒤, 스도쿠 퍼즐을 맞추듯 조각들을 글의 구조에 끼워 맞추는 것이다. 녹음된 10분짜리 설명을 전사해보면, 생각보다 핵심 문장이 두세 개밖에 없다는 걸 발견한다.나머지는 반복이거나, 예시거나, 군더더기다. 말할 때는 자연스럽게 느껴졌던 것들이 텍스트로 보면 전혀 다르게 보인다. 그걸 솎아내면 글의 뼈대가 드러난다. 뼈대가 보이기 시작하면, 그다음은 살을 붙이는 일이다.어렵다고? 그럴 것 같긴 하다. 최대한 쉽게 설명해보겠다.글의 구조는 기승전결이다. 드라마의 전개와 같다고 보면 쉽다. 한 주인공이 예기치 못한 사건에 처하는 것, 발단에 대한 기,그 사건에서 벗어나려 스스로 발버둥치는 것, 본격적인 승,그러나 혼자서는 역부족이어서 누군가의 조력을 받게 되는 것, 이야기의 최고조로 올라가는 전,그리고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며 하나의 교훈이자 결론을 남기는 것이 결이다. 글도 마찬가지다.독자에게 문제를 인식시키고(기), 스스로 시도해보게 하고(승), 한계를 자각하게 만들고(전), 해결의 방향을 제시한다(결). 이 흐름을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글의 완성도는 달라진다. 기승전결이 없는 글은 말하자면 도입도 결말도 없는 드라마다. 재미없을 수밖에 없고, 기억에도 남지 않는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기승전결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실수하는 부분은 '결'이다. 결론을 쓰는 게 두렵거나, 너무 당연한 말 같아서 흐지부지 끝내버리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여기서 앞서 계속 주장해온 내용과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편집일 4년간 실제로 그런 경우를 많이 봤다)그러나 독자는 결에서 글 전체를 판단한다. 마지막 인상이 곧 그 글의 인상이다. 그렇다면 핵심 포인트는 어떻게 잡는가.앞서 녹음했던 내용을 천천히 들어보자.말로 했을 때 가장 강조했던 부분, 목소리가 커지거나 속도가 느려졌던 그 대목이다. 발표나 강의를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청중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하는 순간이 있다. 그게 핵심이다. 글에서는 그 순간을 설계해야 한다. 포인트를 정했다면, 그것을 서면어로 어떻게 옮길지 생각해야 한다. 같은 의미라도 단어 선택에 따라 무게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중요합니다"와 "간과하기 어렵습니다"는 비슷해 보이지만 독자에게 전혀 다른 인상을 남긴다.전자는 필자가 독자에게 선언하는 것이고, 후자는 독자가 스스로 납득하게 만드는 것이다. 좋은 서면어는 설득하는 게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결론에 도달하도록 설계된다. 그 차이가 글의 격을 만든다. 이런 감각을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실 독서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면, 지금 당장 근처에 있는 책 한 권을 꺼내보자. 수필이나 문학은 제외하고, 비즈니스서나 실용서면 충분하다.그리고 내용은 읽지 않아도 된다. 이것만 살펴보자.문장이 어떻게 끝나는가. 조사는 어떻게 쓰였는가. 단락과 단락을 연결하는 접속어는 무엇인가. 명사가 어떤 맥락에서 선택되었는가.이 네 가지만 분석해도, 서면어의 결을 읽어내는 눈이 생긴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해부'하는 것이다. 좋은 요리사가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레시피를 역산하듯,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좋은 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거꾸로 분석하는 습관이 필요하다.콘텐츠는 이미 당신 안에 있다. 그것을 꺼내는 방법이 아직 손에 익지 않았을 뿐이다.